IMF의 원인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이 있을 수 있다. 1996년까지 24개의 투자금융회사가 종합금융회사로 전환되었고 이후 30개로 늘어나서 해외업무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외채를 끌어와서 어음교환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업의 부도로 인해 외채를 끌어서 어음 할인한 이들 종합금융회사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고 특히 한보와 기아의 12조 원가량의 대형 부도 사태는 위기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1998년 여러 은행이 퇴출당하였고, 다른 은행으로 합병하게 된다. 아시아 국가들의 개방정책을 시작으로 외환 보유량이 부족한 시기에 대외 금융 세력의 공격에 외환 보유량이 빠져나가는 이유로 고정환율에서 변동환율로 국가들의 변경하자 아시아 국가에 들어와 있던 외국자본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영국의 투기 세력들은 단기 투자금을 회수해 빠져나가면서 선물환거래를 이용한 주식 대량 매도와 환투기 공격을 감행하여 동아시아 전반에 중앙은행의 외환 보유량을 고갈시키고 그 후 달러 구제금융 요청을 받은 IMF가 강요한 가혹한 구조조정 조건을 통해 부실기업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기업까지 박살 내 헐값에 재인수하려는 투기 세력들의 의도가 있었다. 이러한 국제적 투기 세력들의 공격과는 별도로 그 무렵 미국 정부의 입장이 상당히 주목되는데,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INR은 한국의 외환이기가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여러 한국의 경제 동향을 유심히 살피고 관찰했고, 주한 미 대사관에서는 IMF 데일리라는 일일 보고서를 작성해 본국으로 전송했는데 한국을 돕는 동시에 IMF와 미국의 요구를 잘 시키느냐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었고 한국의 경제 시작이 개방되면 미국의 여러 기업이 들어와 좋은 이권을 노릴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미국과 IMF는 이러한 요구를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경제 이권의 확장을 노리며 외국 투기 자본들의 식민지화를 노렸던 것이라고 생산된다. 당시의 동아시아의 상황보다, 한국 정부의 정책 실패와 무능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래토록 각인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며 그로 인해 IMF와 미국 영국 등 서구 금융자본과 투기 세력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이권을 챙기는 기회로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를 이용한 것이다. 당시의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이권 다툼이 우리나라가 희생양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IMF 경제위기를 우리나라는 정권이 교체되면서 외이 투자 자율화 정책, 대기업을 각 기업으로 독립시키는 구조조정을 단행, IT 육성정책, 신용카드 정책, 정리해고제를 도입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년 만에 실업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른 경제 지표는 IMF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1999년대에 들어서는 내수가 위축되었었지만 빠른 회복을 보이며 두 자릿수 성장을 바라볼 정도였다.
이처럼 한국 경제는 IMF 위기를 겪은 지 2년 만에 고성장 저물가 경상수지 흑자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능력을 발휘했다. 97년도 당시 시민들도 나서 금 모으기 운동으로 자신의 개인재산을 기부하는 운동도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2000년 12월 4일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IMF 위기의 영향으로 정권이 교체되었고, IMF의 조건에 따라 고용시장에 자유 경쟁체제가 도입되어, 많은 노동자가 실업자가 되었고 평생 고용제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정리해고가 자유로워져서 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이 줄어들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건설 지원과 카드 사용 대금의 연말정산 환급 등의 소비 촉진 정책을 실시하여 경기 부양에 성공하고 IMF의 구제금융 관리체제에서 일찍 벗어났다. 하지만 이 소비 촉진 정책은 카드빚에 의한 신용불량자 수를 급격히 증가시켰고 이것이 내수 부진의 원인이 되었다.
IMF는 실업률을 많이 증가시켰다. 1998년 중 실업자 수는 130만 명 이상의 고실업 시대로 접어들었다. 기업들의 투자 축소,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등으로 신규 고용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구조조정, 기업들의 연쇄 부도 등으로 기존 취업자의 실직도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IMF가 요구하던 인수합병 관련 정리해고 등 노동시장 유연성 관련 정책이 시행되면서 구조조정에 의한 실직이 현실화하면서 실업자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 경기가 다시 회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고실업 현상이 해소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물가도 전년도 대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농산물 등 상품 물가는 전보다 불안했다. 부동산 가격은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여 신도시를 중심으로 비교적 큰 폭으로 올랐다. 상반기 중 불안했던 물가는 가을철 농산물 출하기에 접어들면서 하향해 안정세를 유지했다. 쌀 등 농산물 작황이 3년째 호조를 보여 가을 물가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환율이 급등해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으며, 수입 원부자재를 주로 사용하는 밀가루 가공식품, 설탕, 커피, 햄 등 생필품 가격이 크게 올랐다. 98년도까지 가파른 물가 상승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99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안정되었다.
IMF(국제 통화 기금)는 환율과 국제 수지를 감시함으로써 국제 금융 체계를 감독하는 것을 위임받은 국제기구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다.
국제 통화 협력과 환율안정, 환율조정, 경제성장과 낮은 실업률을 조성 즉각적인 재정 보충을 통해 국가들의 지불적응을 쉽게 해주기 위해 조성되었다.
국제통화기금은 점점 가입국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경제
경제학 공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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