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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학 공부 13

by 희환호호 202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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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계획은 18세기 초반에 북미에 식민지를 건설한 프랑스가 세워 미시시피강 주변의 개발 무역 계획이다. 미시시피회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세워진 이 계획은 회사의 실적이 매우 안 좋았지만 발행 가격의 40배까지 주가가 폭등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1717년 8월, 스코틀랜드의 사업가 존 로는 당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미시시피 회사의 경영권을 획득하고 서방 회사라고 이름을 고쳤다. 원래의 목적은 미시시피강 유역의 대부분을 포함한 북미의 프랑스 식민지와 무역에 있었다.

서방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자 프랑스 정부는 북아메리카와 서인도 제도와의 무역에 대한 25년 독점권을 존 로에게 주었다. 1719년 서방 회사는 동인도 회사, 중국 회사, 기타 프랑스 무역회사를 합병하여 인도회사가 되었고, 또한 존 로가 종합은행으로 1716년 설립된 왕립은행까지 소유하게 되었다.

존 로는 교묘한 마케팅 전략으로 인도회사의 주식에 대한 수요를 급격히 증가시켰고, 투기 사고가 발생, 주가는 500리브르에서 1만5천리브르까지 급등했다. 그러나 1720년 급격한 신용경색이 일어났기 때문에 1721년에는 다시 500리브르 원상 복귀 됬다. 같은 해 존 로는 해임되었고 외국으로 잠적하였다.

미시시피 회사의 발행 주식의 양은 1720년경 50만주 정도였다. 즉 주가가 1만 5천 리브르로 당시 회사의 시총은 75억 리브르였다. 주가가 500리브르기까지 붕괴하자, 1721년 9월 시가총액은 2억 5천만리브르까지 떨어졌다.

정부와 존 로는 16억 리브르에 달하는 정부 부채의 모든 것을 회사의 주식으로 매점했다. 이 계획은 성공했다. 정부 부채의 채권자들은 채권이나 어음이 주식을 매입하고 1720년 정부의 총부채인 채권은 이 회사의 자산으로 변환되었다. 이것은 원래 정부에 대한 채권자가 회사의 주주가 되었지만, 회사 경영은 정부에 의해 제어되고 있었다. 정부는 매년 3%인 4천 8백만 리브르의 이자를 지불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입의 10배에 달하는 고액의 채무 상환을 일시적으로 모면하여 채무가 면제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성공으로 주가는 상승하게 되었다.

1721년 미시시피 회사는 파산했다. 조직을 재편하고, 1722년 사업을 재개했다. 1723년 다시 시작한 회사는 루이 15세로부터 새로운 권한을 부여받았다. 담배와 커피의 특허 및 국가가 발행하는 복권을 발행할 수 있는 권리였다. 다시 금융시장에 활기를 보이며 주가와 채권은 상승했다.

이렇게 경제 거품들은 경제와 개인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비이성적으로 열광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은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이다. 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외화보유액이 급감했고 IMF에 20억 달러 긴급 융자를 요청하였다. 외환 위기 속에 대한민국은 외화보유액이 한때 39억 달러까지 급감했다. 그리하여, IMF에서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그 이후 한국경제는 IMF가 요구하는 경제체제를 수용하고 그 요구에 따라 대대적인 국가 경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외환 관리정책의 미흡과 실패가 IMF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IMF가 요구하는 체제에 대한민국의 많은 회사가 부도가 나고 이 과정에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경기가 악화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모두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와중에 정권이 교체되어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고 IMF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IT산업을 장려하고 대기업 간의 사업 교환 및 통폐합으로 경제 재건을 도모했다. 1997년 시작되어 2000년 12월 4일에 국제 통화 기금의 모든 차관을 상환하여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러한 IMF 위기의 원인으로는 1990년대에 접어들어 금융 자유화 진전 및 금융시장의 발전으로 공개 시장 조작을 주된 통화정책 수단으로 활용함에 따라 지급준비제도의 역할은 매우 축소되었다. 특히 1996년 이후 금융기관의 대외경쟁력 제고와 공정경쟁을 위해 9%를 상회했던 지급준비율을 1~5% 수준까지 대폭 인하함으로써 통화정책 수단으로서 지급준비율의 유용성은 크게 낮아졌다.

당신 동남아시아의 연쇄적 외환위기 속에 대한민국 정부의 외환 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가 IMF 환란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국가의 외환보유고를 유지 관리하고 책임을 지는 행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국내의 금융 기업들은 저리의 해외 단기채를 얻어 동남아 국가들에 장기채로 빌려주면서 2~3%의 이자 차익을 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로 해외 단기채들의 만기가 연장되지 않자 국내 자금을 이용해 이를 상환했고, 결과적으로 국내 자금이 유출되었다. 기업의 부도처럼 외환보유고가 감소하여 외환 지급 불능사태의 위기를 초래하였으며 이에 따라 국가신용도가 하향 조정되었고 원화 가치의 환율이 하락하는 등 국내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부정 대출도 원인이 되었다. 뇌물을 받고 기업에 무분별한 대출을 하고 이러한 대출들로 인하여 엄청난 금액에 대한 부실 채권이 발생했고 이는 국가신인도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부도 처리해야 할 기업은 부도처리를 하지 않았다.

환율 운용 정책 실패로 외국 투자기관들은 한국의 경제도 어려워질 거라 판단하여 투자자금을 대규모로 회수해갔다. 또한 정부는 1997년 9월 이후 계속된 외환시장 불안정 속에서 원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 방어를 시작하였고 이에 들어가는 비용이 증가해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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